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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6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 성경**패스티브에서 퍼왔어용^^*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 성경
패스티브에서 퍼왔어용^^*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 ‘예언’에 대해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경제적, 지질학적, 환경적 요인 등 모든 면에서 불안하다. 미래를 알게 된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고 행복이나 성공을 얻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는 데 꽤나 관심이 많다. 자신의 내일과 미래를 알고 싶어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아가고 타로, 손금, 관상, 심지어 일간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 따위에 명운을 걸기도 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터.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예언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경우를 보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점성학에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예언은 철자와 문장의 변형, 그리고 생략, 고어와 외국어를 뒤섞어 놓은 혼란스러운 표기법, 일반명사와 고유명사의 상호 변환, 무작위적인 순서를 특색으로 하는 4행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갖가지 임의적 해석들이 난무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해석은 최근에 일어난 재앙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4행시를 찾아낸 후 유사한 내용은 부각시키고 다른 내용은 대강 둘러대는 식이다. 어쩌면 그의 예언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성경은 예언서다. 성경의 예언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객관적인 증거로는 지나간 세계 역사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예언의 중심에 바로 성경이 있고 그 예언을 이루시고 세계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이사야 41:21~23)


역사적으로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을 무너뜨린 나라가 메대·바사(페르시아)였다. 그 후 헬라(알렉산더제국)가 등장하여 온 세계를 다스렸으며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는 리시마커스, 카산드로스, 셀리우커스, 프톨레마이우스에 의해 네 나라로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한 수백 년의 역사를 이미 성경은 바벨론이 무너지기 전에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세계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다니엘 8:20~22)


성경은 바벨론 이후로 등장할 나라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수 백 년 이후에 일어날 일까지도 예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세계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인류 역사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예언하고 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3~8)


성경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막연하고 모호한 예언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인 성경은 반드시 알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를 움직이시며 예언을 이루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19~21)


<참고자료>
 ‘노스트라다무스’, 네이버캐스트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 성경

2015년 5월 4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패스티브 §☞영혼의 학대자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패스티브 §☞영혼의 학대자




자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평온하고 경이롭다.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앙상한 나무들은 연둣빛 새싹들과 꾳을 피워내느라 여념이 없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고 산새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 지나면 곧 진초록의 여름이 올 것이고, 이어 울긋불긋 단풍 드는 가을이, 그리고 하얗게 눈 덮인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연 사진작가들이다. 자연사진은 산이나 강 등을 담아내는 풍경사진과 야생 동식물 등 생물을 대상으로 한 생태사진 그리고 수중사진 등이 있다. 사진작가들은 오랜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아낸다. 새끼 새가 알에서 막 부화되는 모습, 어미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순간까지 자연사진을 보면 이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감탄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한 사진작가가 새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초록의 숲을 배경으로 부모 새와 새끼 새의 끈끈한 사랑과 새들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담아낸 사진들이 전시됐다. 나뭇가지 위에 새끼 새들은 작은 부리로 부모 새가 물어다주는 모이를 받아먹는다. 귀여운 새끼 새들을 어미 새와 아비 새가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진다. 사진의 완벽의 구도와 색채감, 새들의 움직임은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믿을 만큼 예쁘다.


그런데 이 사진들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다. 사진과 새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은 마냥 멋있게만 보이는 이 사진들이 실은 “비도덕적인 만행이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사진들이 동물을 학대하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촬영된 연출 사진이라는 것이다.


부모 새와 새끼 새들이 나란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전문가는 “새끼 새들이 죽지 않기 위해 겨우 앉아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새의 습성상 새끼 새들이 나란히 앉을 수는 없는데, 여러 마리의 새끼 새가 줄 맞춰 앉아 있는 장면은 새를 학대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솜털도 마르지 않은 새끼를 납치해서 부모 새의 보호본능을 악용한 사진도 여러 장이다. 날지도 못하는 새끼 새를 휘청이는 꽃가지 위에 올려놓고 부모 새를 유인하는 사진, 여리디여린 새끼 새를 나뭇가지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어미 새와 아비 새가 그 주변에서 맴도는 사진도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새끼 새의 발을 본드로 붙여놓은 것 같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 기가 막힌다.


보통 새들은 맹금류나 들고양이, 살쾡이 등 천적을 피해 어둡고 잎이 많은 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는 둥지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둥지는 훤히 드러나 있고, 주변에 무성해야 할 잎사귀는 구도에 맞게 자리해 있어 인공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의 가지와 잎사귀들을 톱이나 전정가위 등으로 쳐내거나 잘라낸 흔적이라고 한다.


어떤 사진 속에는 새끼 새가 보호받을 둥지조차 없다. 여러 마리의 새끼 새 중 한 마리만 꺼내 가지 위에 올려놓고 어미 새를 유인하거나,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날아오는 부모 새들에게 돌을 던져 좋은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단다. 자연광을 더 밝게 받기 위해 둥지를 아예 옮겨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카메라 플래시나 조명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새들이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은 자명하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사진을 보니 화가 치민다. 안전한 둥지 안에서 부모 새의 보호를 받으며평온함 속에 있어야 할 새끼 새들이 몇몇 사진작가의 탐욕과 비윤리적인 행위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양심적인 행태는 종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거짓 목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명을 담보로 영적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당부하신 말씀은 내 양(백성)을 잘 보살피라는 것이었다(요한복음 21:15~17).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친히 본보여주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부탁하셨다(마태복음 28:19~20). 그런데 양을 돌봐야 할 목자들이 거짓말로 양들을 속이며 양들을 돌보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에스겔 22:25~28)


하나님의 율법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거짓 목자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받았다고 하신다. 그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볼모로 잡아 성도의 피를 흘리고, 영혼을 멸하는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 사람의 계명인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둔갑시켜 거짓말로 많은 영혼을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 22:31)


사진 속 새들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새들의 실제 상황은 이미 천적에게 노출되어 생명이 위태롭다. 겉모습만 아름답게 찍힌 새들의 현실과 거짓 목자에게 속아 일요일마다 성경을 들고 경건한 척하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 다를 게 있을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본보여주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고 있는 유일한 교회이다.


<참고자료>
 1. ‘자연 학대 사진촬영은 이제 그만’, 한겨레, 2013. 2. 13.
 http://ecotopia.hani.co.kr/?mid=media&category=112&page=6&document_srl=68626
 2. ‘새끼 납치·둥지 훼손…‘자연 학대’ 사진 촬영 이제 그만’, 한겨레, 2014. 7. 15.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47053.html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패스티브 §☞영혼의 학대자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나침반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향한다!!

하나님의교회 나침반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향한다!!
당신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오직 성경 속 진리를 통해 참 하나님이신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나침반의 빨간 바늘은 항상 N극을 가리키지 않는다
패스티브닷컴
https://pasteve.com/?m=bbs&bid=B2BibleChurchOfGod&uid=1659
하나님의교회 나침반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향한다!!



수세기 동안 인류는 나침반의 빨간 바늘이 항상 N극을 가리킨다는 잘못된 상식 속에 살아왔다. 사실 빨간 바늘이 N극이 아닌 S극을 가리키는, 지구자기장 역전현상은 지난 2,000만 년 동안 약 20만 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 지구가 생성되고 45억 년 동안 수천 번이나 남북이 뒤바뀌는 현상을 겪었다는 얘기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러나 우리는, 기존의 (잘못된) 상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역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진리가 자리잡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주관’이다.





고대 우주관, 우주의 중심은 ‘지구’

고대인들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생각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천천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공통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각 민족마다 다양한 우주 창조 신화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 로마 신화다.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그리스 · 로마 신화 속의 우주관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의 우주관의 핵심은 천체를 최초로 만들어 움직이게 하는 존재가 ‘신’이라는 것. 이러한 이론은 교회의 사상과 잘 맞아떨어졌고, 교회가 그의 ‘천동설’을 채택하면서 유럽 전역은 오랫동안 이를 상식으로 받아들였다.



중세 및 근대 우주관, 우주의 중심은 ‘태양’ 

1543년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혹성의 운동과 지구의 회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천동설이라는 상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회전하는 것은 물론 둥글다는 견해를 지지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 후 갈릴레이가 아리스토텔레스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1609년 망원경을 스스로 제작해 1610년 목성의 위성과 토성의 띠, 달 표면의 요철,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했다. 이러한 명백한 증거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에 대한 포기 명령을 받았다. 그는 지동설의 포기를 언약하고 사면됐다.


천동설이라는 상식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것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고부터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는 새로운 상식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절대적이라고 믿어왔던 상식이 깨지기까지 약 300여 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현대 우주관,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라는 상식은 또다시 깨졌다. 우주 저편에 쏘아올린 탐사선은 지구별에 갇힌 사람들을 조롱하듯 상식을 깨뜨리는 사진들을 전송해왔다. 지구와 태양은 단지 2000억 개 별로 이뤄진 우리은하 안에 존재하는, 지극히 작은 별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우주탐사선의 활약을 통해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도, 태양도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지름 10만 광년의 거대한 원반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은하’ 안에는 2000억 개의 별이 존재하며, 한 번 회전하는 데 2억 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지구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상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실감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늘 ‘상식’을 뛰어넘는 ‘진리’를 찾아 헤맨다. 하나님께서 그 진리를 자신의 책장 속에 두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성경, 그것에 이미 우주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3500년 전, 하나님께서는 욥기를 통해 우주에 대한 진리를 알려주셨다. 욥기가 기록될 당시는 청동기시대로, 농경생활을 주업으로 수렵활동을 하던 때다. 제대로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하나님께서는 현대문명을 뛰어넘는 우주관을 남기셨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어떻게 청동기 시대에, 현대 문명에서나 가능한 우주관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일까. 시편, 이사야의 기록 또한 중세와 근대, 현대를 훨씬 앞서가는 우주관을 나타내고 있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편 19:5~6)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이사야 40:15~17)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역시 답은 성경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지구와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무엇을 통해 깨뜨릴 수 있을까. ‘진리’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성경 밖에서 진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상식’일 뿐이다.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만을 향하는 하나님의교회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멜기세덱 예언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성취

*멜기세덱 예언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성취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멜기세덱의 예언 또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에 대한 예언이다.
안상홍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교회는 재림 멜기세덱 안상홍님을 믿는다.
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재림 멜기세덱이시라 믿고있는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자.
출처: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m=bbs&bid=B3GodTheFather&uid=1436



*멜기세덱 그는 누구인가 


성서에서는 어떤 인물에 대해 설명할 때 대부분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아들’로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누구의 자손인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그 인물에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바로 ‘멜기세덱’이 그중 한 사람이다.
과연 멜기세덱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성서에서는 어떤 인물에 대해 설명할 때 대부분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아들’로 말한다. 예를 들어 요나의 경우도 이렇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요나 1:1)


그런데 성경에는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누구의 자손인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그 인물에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바로 ‘멜기세덱’이 그중 한 사람이다.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고대시대에는 제사장과 왕을 한 사람이 겸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으로 있으면서 제사장도 겸직했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인물이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출처: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멜기세덱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왕으로 제사장을 겸직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 시대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없는 일이다. 과연 멜기세덱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1,500여 년이 지난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나와 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님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왕이시다. 이와 함께 구원을 위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다윗은 훗날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이렇게 전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시편110:4~5)


멜기세덱이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떡과 포도주로 죄사함의 축복을 주신 것, 이 또한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이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열과 같은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그렇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멜기세덱은 분명 예수님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를 통해 멜기세덱에 대해 언급하며 예수님과 연관지었다. 둘의 관계가 예언과 성취에 놓여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성경 구절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1~12)


사도 바울은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았던 부분을 앞서 설명해 놓고 왜 바로 이어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을까. 과연 멜기세덱에 대해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7장에서 그 부분에 대해 말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이 살렘 나라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런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 ‘누구의 아들’로 표기하지 않았던 이 부분, 이것에 감춰진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 이렇게만 공식이 이뤄진다면 어려울 것이 없는 예언이지만 이렇게 해석되기에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복음 1:1)


요셉과 마리아라는 아버지, 어머니를 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아비도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이 땅에 태어난 사람치고 아비나 어미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비도 어미도 없다는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뜻이다. 이 예언대로라면 멜기세덱은 불신자의 가정에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초림 예수님은 아비, 어미인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가정이었다.


또 족보도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족보에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치고 이스라엘의 족보에 이름이 없을 수 없으므로 족보가 없으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이어야 한다.


멜기세덱의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재림이 필연적이다. 성경의 예언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의 기록된 멜기세덱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심을 사도 바울은 9장에 이어 기록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멜기세덱의 예언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시는 재림 예수님 그는 바로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멜기세덱처럼, 초림 예수님처럼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주신 재림 멜기세덱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렇다. 재림 멜기세덱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께서 떡과 포도주의 진리 새언약유월절로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셨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상홍님은 하나님의교회 영생의 축복을 주신 재림 멜기세덱이심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