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앙모하는 하나님의교회 행복한 가정 [얼룩이의 숲]
숲 속의 아침은 여느 때처럼 맑고 상쾌합니다.
나무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이 또르르 미끄러지면서 그 밑을 지나던 개미 위에 철퍼덕 하고 떨어지자, 개미가 흠칫 몸서리를 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갑니다. 일찍이 일어난 새들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분주히 날아다니고, 벌레들은 그 눈을 피해 더욱 분주히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빼곡히 들어차 있는 나무들이 숨 쉬며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에 숲 속은 구석구석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찰칵, 찰칵.”
사진사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테스트를 합니다. 얼룩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사진 찍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꼬물꼬물 기어왔습니다.
얼룩이는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까만색 몸 중간에 하얀색 무늬가 있어 그렇게 지어준 것이죠. 얼룩이는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사진 찍는 모습도 멋있지만, 무엇보다 머리에 난 뿔이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갑옷까지 두르고 있어 마치 늠름한 용사처럼 보였습니다. 얼룩이는 쓴맛이 나는 쥐방울덩굴 잎을 와작와작 씹어 먹으며 부러운 듯 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머리에는 왜 뿔이 달려 있어요?”
“음, 이건 적과 싸울 때 쓰는 무기란다.”
“저도 그런 뿔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얼룩이가 불끈 힘을 주며 몸에 난 돌기를 세워보지만 이내 축 처지고 맙니다.
“얼룩아, 너는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하지?”
“고약한 냄새를 뿜어요.”
“그래,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거란다. 그러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냄새를 풍기는 것보다 날렵한 뿔을 휘둘러서 싸우는 게 훨씬 멋있잖아요.”
“나중에 자라면 알게 될 거야. 네가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지.”
그래도 얼룩이는 아저씨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 개미 한 마리가 온몸에 물기를 묻힌 채 지나가자,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봐요 개미 씨, 아침에 수영이라도 하셨나 봐요!”
“아휴, 오는 길에 물 폭탄을 맞았지 뭐예요. 덕분에 잠이 확 깼다니까요. 호호!”
얼룩이는 개미의 잘록한 허리를 보고는 자신의 몸을 보았습니다. 머리부터 끝까지 굴곡 하나 없이 원통형의 통통한 몸매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내 몸매는 왜 이런 거야! 나중에 자라면 아름다워진다고? 이런 몸매로 어떻게…어림도 없어.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날 위로해주려고 그러는 거야.’
얼룩이는 괜한 이파리만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그런 얼룩이뿐 아니라 숲 속 곳곳에 있는 곤충들을 부지런히 사진기로 찍었습니다. 빨간색 등에 까만색 점이 박힌 동글동글한 무당벌레 한 쌍도, 마치 무술을 하듯 두 팔을 세우고 노려보는 사마귀도, 부지런히 집을 짓는 거미도, 꽃술에 앉아 열심히 꿀을 빠는 벌도….
알에서 깨어난 지 며칠 안 되는 얼룩이는 처음 보는 곤충들도 많았습니다. 얼룩이의 눈에는 모든 곤충들이 완벽하게만 보였고,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사마귀를 보면 갸름한 턱이 부럽고, 잠자리를 보면 큰 눈망울이 부럽고, 왕사슴벌레를 보면 우람한 집게가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얼룩이 곁으로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사진첩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우리 심심한데 사진첩이나 볼까? 그동안 아저씨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란다.”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사진첩을 펼치자, 첫 장에는 누렇고 통통한 벌레가 몸을 반으로 오므린 채 누워 있었습니다.
“이 벌레는 뭐예요? 정말 못생겼네요.”
얼룩이는 자기보다 못생긴 곤충이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굼벵이라는 아이란다. 귀엽지 않니?”
“윽, 귀엽지는 않아요.”
“이 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어떻게 되는데요?”
아저씨가 다음 장을 펼치자 투명한 날개를 가진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매미가 되지.”
“좀 전에 그 벌레가 정말 매미의 어릴 적 모습이에요?”
“그렇단다.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이처럼 믿기 힘든 일들이 우리 숲 속에서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단다. 너도 곧 경험하게 될 거야.”
“정말이요?”
“물론이지.”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 변화는 인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거든.”
며칠이 지나자 얼룩이는 정말 몸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어요. 나뭇가지 위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죠.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그런 얼룩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때가 온 것 같구나.”
“무서워요, 아저씨.”
“두려워할 것 없단다. 너의 참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야.”
얼룩이의 몸은 누런빛으로 변하면서 서서히 굳어 갔습니다. 그리고 곧 얇은 막에 완전히 둘러싸인 채 몇 날 며칠을 깜깜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버텨야 했습니다.
‘도대체 며칠이 지난 거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아니야.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 된다고 했어.’
얼룩이는 두려움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으면서 여러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얼룩이가 할 수 있는 건 참고 인내하는 것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갑갑하고 숨통이 막힐 듯해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긴긴밤이 언제쯤 끝이 날지, 과연 찬란히 빛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기다릴 수는 있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을 볼 수 있
다면 기다림의 터널을 통과하는 건 최소한의 몫이니까요. 그리고 얼룩이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너의 참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야.’
얼룩이는 장수풍뎅이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어요.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도, 사마귀처럼 갸름한 턱도 없는, 그저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했는데 다른 모습이 아니, 진짜 모습이 있다니! 얼룩이는 그 모습이 어떨지 무척 궁금했어요.
“짹짹짹.”
얼룩이는 청명하게 들리는 새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어요. 쏟아지는 아침 햇살 아래 얼룩이는 어느새 자유로운 몸으로 변해 있었어요. 어젯밤, 몸부림을 심하게 치며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어요. 그땐 어떻게든 밖으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요.
얼룩이를 감싸고 있던 껍데기는 속이 텅 빈 채 말라 있네요. 나뭇잎에 고인 이슬에 자신을 비추어 본 얼룩이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어요. 먹빛을 띤 큰 날개 한 쌍, 날개에 새겨진 붉은빛 하트 무늬, 가늘고 긴 더듬이.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얼룩이가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어요. 그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장수풍뎅이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저씨!”
“이젠 더 이상 얼룩이라 부를 수 없겠구나. 나비야,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 사진기에 담아도 되겠니?”
“물론이죠!”
얼룩이는 훨훨 날아 활짝 핀 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어요.
“찰칵!”
못생긴 벌레에 불과했지만 끝까지 참고 기다려 나비가 된 얼룩이처럼, 고요하지만 생명이 넘치는 숲 속에는 오늘도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출처 :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앙모하는 하나님의교회 행복한 가정 창작동화 얼룩이의 숲
댓글 없음:
댓글 쓰기